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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대한민국, “소는 누가 키우나”

박원순, 한동훈의 휴대전화 그리고 김웅종 소방관

박종완 기자 | 기사입력 2020/08/01 [11:02]

정보화 대한민국, “소는 누가 키우나”

박원순, 한동훈의 휴대전화 그리고 김웅종 소방관

박종완 기자 | 입력 : 2020/08/01 [11:02]
강길모 미디어이슈 고문


디지털혁명으로 이룩된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누리는 혜택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 상상도 못했던 수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우선 1960년대 시골 동네에 한 대가 있을까 말까했던 TV를 이제는 어린 아이들조차 한 대씩 ‘휴대’하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구촌 여러 나라들 중에서 국가정보화수준만큼은 단연 압도적 우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좀 지난 통계이지만 국제연합(UN)의 전자정부평가에서 2010년, 2012년, 2014년 3회 연속 1위를 기록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정보화로 얻는 편리함과 각종 혜택의 이면에는 다양한 부작용과 문제점이 필연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보 격차 심화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 우려를 비롯해, 개인 정보 유출에 따른 피해 등이 그 대표적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공권력에 의한 정보통제, 과도한 감시체제 등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점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누리고 있는 정보화시대의 ‘총아’는 단연 휴대전화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음성, 영상통화가 기본 기능이지만, 휴대전화로 은행 업무도 보고, 파일도 주고받고, 영화와 음악 등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유용한 수단이며, 일정관리와 일기장도 기본이고, 확장된 카메라 기능으로 직접 영화를 찍을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휴대전화를 분실하면 자기 집도 찾아가지 못할 세상이 되었습니다. 휴대전화를 상실한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상태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휴대전화가 없는 ‘나’는 불완전한 개체로 전락하고, ‘나’없이도 휴대전화는 ‘나’의 일부로서 존재의미를 갖는 셈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최근 두 사람의 휴대전화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휴대전화와 한동훈 검사장의 휴대전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휴대전화는 현재 경찰이 수사 목적으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박 전시장의 휴대전화를 변사 사건에 대한 ‘사인을 규명할 목적’으로 압수한 것이기 때문에, 성추행 문제까지 휴대전화 내용을 조사할 수는 없었지만 ‘사인규명 목적’의 휴대전화 포렌식조차도 유족들의 반대와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중단된 상태에 있습니다.

 

법원이 일단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에 대한 포렌식은 중단됐지만, 법원의 정식 판결에 의해 다시 포렌식이 개시될 여지는 있다고 합니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불투명하고, 국가인권위가 성추행 문제를 직권 조사하겠다고 나섰지만 휴대전화 포렌식 중단으로 조사에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박 전 시장은 이미 먼 곳으로 떠났지만, 남아있는 휴대전화가 박 전 시장을 대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점이 과연 정보화 사회의 유용한 점인지, 아니면 정보화 사회에서 두려워해야 할 부작용인지는 각 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관계없이, 망자의 휴대폰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이 사실상 ‘검시’와 같다는 생각을 하면 왠지 으스스해지는 느낌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도 내가 남긴 ‘디지털 시신’의 증언까지 막을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한동훈 검사장의 휴대전화를 둘러싼 논란은 말 그대로 점입가경입니다. 법무부 장관을 향해 ‘일개 장관’이라고 발언했다 하여 화제가 됐던 검사장에게, 이번에는 일개 ‘부장 검사’가 완력을 휘둘렀다 해서 공방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편한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사상 초유의 ‘현직 검사간 육탄전’이 발생한 가운데 한동훈 검사장과 정진웅 부장검사 양측은 모두 자신이 피해를 당했다는 취지의 엇갈린 주장을 내놓으면서 진실공방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잘하고 잘못했느냐를 떠나서, 대한민국 법질서 수호의 첨병이자 보루가 되어야 할 검찰조직이 이렇게 난장판이 되어도 괜찮겠느냐는 탄식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정말 한심한 것은, 현직 검사끼리 난투극을 벌인 배경입니다. 사건의 발단이 된 ‘검언유착’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일단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직 검사끼리라도 사람인지라 일대일로 멋지게 한 판 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싸움은 사실상 패거리간의 떼 싸움이며, 고상한 정치철학의 대결이 아니라 정치권과 검찰, 언론들이 얽히고설킨 알량한 패거리 이기주의의 대결이라는 점이 짜증스럽기만 합니다.

 

당장 정치권에서 쏟아낸 말들부터 품격 제로입니다. 여당 최고위원들은 일제히 한동훈 검사장이 기고만장하고 언론플레이에 능하다며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이런 표현도 어색하지만, 정작 어색한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 이른바 ‘적폐수사’의 선봉장이었던 한동훈 검사장을 ‘참검사’라고 칭송했던 여권이었기에 더욱 어색합니다. 

 

보수 진영 출신 전직 대통령 2명, 전직 대법원장, 재계 1위 총수 등이 한동훈 검사장의 수사를 받고 재판 중인 현실에서, 한 검사장을 싸고도는 보수야당의 태도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인 야당’이라고 자부하는 진중권씨는 한 검사장을 직접 옹호하지는 않지만, “검찰 내에서 ‘신주류’로 떠오른 순천고 일진들이 무리를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코로나19의 근본적 두려움은 ‘방역’과 그에 못지않게 ‘경제’였습니다. 6월 생산지표가 조금 나아졌다곤 하나, 코로나 여파로 죽을 쑨 지난달들에 비해 나아졌다는 것이지 1년 전 지표보다 못한 현실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상대국의 경제가 엉망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쓰나미가 언제 얼마만큼 대한민국을 엄습할 것인지 초조하고 불안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하루하루 생활은커녕 생존을 걱정하고 있는 민초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당장 해결해주지 못하더라도 이 놈의 나라가 최소한의 ‘품격’은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민들이 정부와 지도자를 믿고 일치단결하여 국난 극복에 최선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국가질서 유지의 중심축들이 자중지란에 더해 개그 수준의 추태까지 보인다면 과연 국민들은 누구를 의지하고 희망을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7월 19일 오전, 강원도소방본부 119 종합상황실에 장난 같은 문자메시지 신고가 들어옵니다. 신고자는 'ㅅ00ㅏㄹ0ㅕ줴0애요0'라는 문자를 시작으로 1분 뒤에는 'ㅏ0사ㅏㅇ려0ㅔ요', 7분이 지난 뒤에는 특정 지명으로 보이는 두 글자와 함께 세 자리 숫자를 문자로 보내왔습니다. 

 

신고를 접수한 김웅종 소방장은 맞춤법이 맞지 않는 메시지가 연속으로 들어오자 처음에는 오인 신고를 의심했지만, 메시지가 '살려주세요'라는 의미에 가까운 점과 신고자가 전화를 받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긴급상황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해 신고자 위치를 추적하게 됩니다.

 

김 소방장의 분별 있는 판단과 조처가 없었다면, 간신히 휴대전화로 SOS를 치고 쓰러졌던 신고자의 운명은 심각했을 것입니다. 신고자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구조되어 생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최고 수준의 정보화 인프라 못지않게,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제대로 작동되었기에 신고자의 휴대전화는 구명의 밧줄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나라의 고위 지도층 사이에서 휴대전화가 ‘디지털 검시’의 대상이 되고, 패거리 육탄대결의 기폭제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휴대전화가 생명의 수호신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김 소방관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품격을 지켜낸 일등 국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첨단 정보화 사회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솔선수범해야 할 지도층과 정치권이 정보화의 그늘에서 헛발질하고 있는 지금, 묵묵하게 자기 자리에서 의롭게 ‘소를 키우고 있는’ 제2, 제3의 김웅종 소방관들에게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열렬하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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