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정권 획득을 목적으로 뭉친 패거리’라고 정의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상식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그냥 뭉친 패거리가 아니라 ‘정견을 공유하는 자들’의 패거리라는 것이 정당론의 기본입니다.
정견(정치적 관점. 정치이념과 정치철학)을 공유하는 패거리들이 정권 획득을 위해 자신들의 정견에 기반한 국가운영의 기본 철학과 정책을 제시하고 국민의 지지를 확대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정당의 존재 의미요 정당 활동의 기본이라고 할 것입니다.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이 패거리집단이 정권을 획득하는 결정적 과정이 ‘선거’입니다. 선거를 통해 각 정당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갈고 닦은 정권운영 역량을 국민으로부터 평가받게 받게 됩니다. 그 평가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각 정당들의 ‘공직후보 추천기능(공천)’입니다. ‘공천’이야말로 정당들의 기본 기능이요 존재 의미라는 것입니다.
정당이란 것이 각자의 속셈은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겉으로는 ‘사리(私利)가 아닌 정치철학을 공유하는 패거리’라고 자부한다면, 각 정당들의 공천은 어디까지나 ‘정견을 공유해 온 패거리’ 중 누군가를 선택하는 과정이어야 옳습니다. 선거전까지 정당활동 과정에서 각별한 소명의식과 리더십으로 국가운영의 공적기능을 수행할 역량이 충분하다고 검증된 인재들을 국민 앞에 내놓고 선택받는 공천이라야 비로소 정당의 존재 이유가 구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정치권에서 선거 때만 되면, 공천과정에서 각 정당들이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모습이 경쟁적으로 벌어집니다. 각 정당들이 스스로를 시궁창에 던져놓고 누가 더 무책임하고 누가 더 무능력한지 경쟁하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코미디의 첫 번째 행태는 이른바 선거 때마다 요란하게 벌어지는 ‘인재 영입 쑈’입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공천’을 위해 존재했던 정당들이 그동안 자신들은 너무도 무능하여 도저히 공천을 책임질 수 없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외부 인사들을 모셔야 비로소 공천이 이뤄질 수 밖에 없다는 서글픈 고백이 바로 ‘인재 영입 쑈’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인재 영입이란 것이 ‘정견을 같이하는 동지’를 모시기보다 일시적 용도의 유명세를 먼저 따지는 행태는 오히려 애교로 봐줘야 할 지엽적인 문제라고나 할까요?
공천과 연관된 두 번째 코미디는 ‘여론조사 공천’입니다. 정당의 본질적 기능과 사명이 공직수행의 적임자들을 발굴하고 길러내 선거 과정에서 국민 앞에 당당하고 떳떳하게 내놓아야 할 것인데, 정당 스스로 자신들이 공천해야 할 사람들이 국정 능력을 갖췄는지 아닌지 모르겠으니 국민들이 알아서 좀 판단해달라는 ‘직무유기 행위’가 바로 여론조사 공천의 본질입니다.
특히 참고자료에 불과한 여론조사를 아무리 내부 경선이라도 실제 투표행위와 동일시하는 것은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요소를 무시하는 반헌법적 행태임에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이상한 현실’이 대한민국 정치의 어이없는 관행이 되어버렸습니다.
공천과 관련된 가장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세 번째 코미디는 공천심사위원들을 외부 인사로 채우는 것입니다. 정당의 절대적 기능인 공천을 외부에 의뢰한다는 것은, 가장 확실한 정당의 자기존재 부정행위일 뿐입니다. 신랑 신부가 배우자를 결정하는데, 도대체 판단할 능력이 없어 여론조사로 배우자를 선택하고, 나아가 내 가족들과는 안면도 없던 사람들에게 배우자를 결정해달라고 매달리는 꼴과 다를 것이 없으니 코미디 중 코미디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한국정치에서 벌어지는 이 황당한 선거 코미디에 대해 별로 웃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당들도 자신들의 자기부정 행위를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국민들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정당이 스스로 존재근거를 부정하고, 배우자를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이 기막힌 코미디에 관객들이 웃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요?
우리 정치권의 정당들은 ‘국민 눈높이 판단력’ 차원에서 이미 오래전 스스로 파산선고를 내린 상태입니다. 국가경영의 미래비전과 당면과제에 대한 정책적 비전으로 국민들로부터 정상적인 지지와 선택을 얻어낼 수 없는 무능력 집단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 정치이념과 정책비전을 중심으로 공무담당자들을 양성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사익(私益)추구 패거리’로 존재해왔다는 자기 고백을 ‘여론조사 공천과 공천 외주(外注)’라는 코미디로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국민들도 이미 정당들의 ‘자격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식상한 코미디를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작 우리 국민들이 선거 행위에 나설 때, 대부분 어쩔 수 없이 후보자 개인보다는 거의 ‘정당 선택’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버거운 삶의 무게로 인해 공직후보자 개개인에 대한 판단을 할 여유가 없기에, 선거 때가 되면 절대 다수가 정당으로 선택하고, 나머지는 대충 감으로 주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정당들이 자체적으로 충분히 검증하고 검증해서 신중한 공천을 통해 국민들의 판단을 도와줘야 함에도, 공천과정마저도 국민에게 떠넘기고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공천을 외주(外注)주는 우리 정당들의 뻔뻔한 행태를 도대체 어떻게 응징해야 하는 것인지 가슴이 답답합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선거 국면에서 스스로 공천을 책임질 수 없는 정당은 해산해야 마땅합니다. 대의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과정에서 국민에게 백해무익했음을 자복하고 그간 사용한 국고보조금을 전부 토해내야 합니다. 정당을 전부 해산한 상태에서, 선거 때엔 별도의 절차를 거쳐 국민공천위원회 비슷한 것을 만들어서 여론조사든 뭐든 필요한 방법으로 공직후보자들을 공천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와 국민에게 이로울 것입니다.
정견을 같이하는 정권획득 목적의 고유한 정당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사익(私益)추구의 패거리 집단만 존재하며, 선거 때만 되면 이 사익추구 패거리들의 ‘황당 코미디 쑈’를 강요받는 우리 국민들이 너무 안타깝기만 합니다. 도대체 ‘정치의 기본과 근본’을 모르는 자들의 손에 언제까지 우리 국민들이 우롱당해야 하는 것인지, 못내 분통 터지는 오늘입니다.
(덧붙이는 말) 물론 공천을 외부 인사에게 맡긴다는 것이 실제론 권력 실세들의 ‘눈가림 쑈’라고 볼 수 있지만, 최소한 정당들이 대의민주주의 절차적 측면에서 국민에 대한 기본 예의를 지키고 있느냐에 대한 문제의식이 우선이기에 본문에서는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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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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