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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와 검찰개혁, "배반의 장미들에게 이 나라를 맡기노니"

박종완 기자 | 기사입력 2020/12/16 [22:22]

공수처와 검찰개혁, "배반의 장미들에게 이 나라를 맡기노니"

박종완 기자 | 입력 : 2020/12/16 [22:22]
강길모 미디어이슈 고문


Jtbc가 내년 초에 ‘언더커버’라는 드라마를 방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영국 BBC 원작을 리메이크한 것이라고 하는데, 인권변호사 출신의 ‘공수처장’ 역에 탤런트 김현주씨가, 국정원 비밀요원 출신의 남편 역에 지진희씨가 열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BBC의 원작에는 영국 최초의 ‘흑인 여성 검찰 총장’이 주인공이지만, Jtbc에서는 ‘검찰총장’이 ‘초대 공수처장’으로 각색되었다고 합니다. 원작의 ‘검찰총장’을 ‘공수처장’으로 바꾼 것에 대해 방영이 확정된 것도 아닌 상태지만 벌써부터 ‘정권 입맞추기’라는 논란이 있다고 합니다.

 

Jtbc의 각색에 대해, 보기에 따라서는 그저 드라마의 극적 효과를 고려한 것으로 너그럽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인데, 이런 문제까지 정치적 잣대를 들이대고 떠들어대야 하는 우리의 촌스러운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공수처’는 1996년 참여연대가 처음으로 검찰의 기소독점 폐해를 보완할 부패전담수사기구로 제안했었고, 1997년 DJ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를 대선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도 이를 공약에 포함시켰었고, 2004년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총선 공약집에 이를 포함시킨 바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2017년 대선공약으로 이를 제시했었고, 현 야당 쪽의 김문수 전 경기지사, 정몽준 전 야당대표, 이재오 전 의원 등도 공수처를 거론한 바 있었습니다. 두 번의 대선공약이라는 점에서 문대통령 측은 말 안 듣는 검찰총장 때문이라거나, 권력 관련 수사를 회피하려 공수처를 밀어붙였다는 비판에 대해 나름 반박할 근거가 있는 셈입니다.

 

공수처에 대한 정치권의 입장은, 대체로 검찰 권력이 ‘내 편’이 아닐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적극적 입장이고, 검찰 권력과 우호적일 것으로 판단되는 시기에는 소극적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당대 정치권력과 검찰권력의 함수관계에 따라 공수처가 매력적이기도 하고, 불편한 것이기도 했던 셈입니다.

 

정부여당이 확정한 공수처법의 핵심 쟁점은 ‘공수처장 임명권’과 관련된 ‘정치적 중립성’ 논란입니다. 당초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하여 참여연대를 비롯한 공수처 도입론자들은 ‘대통령의 인사권 범위 밖’에 공수처장 임명권을 둔다는 것이 ‘안전장치’라고 강조한 바 있었습니다.

 

검찰총장을 대통령이 임명함으로써 빚어졌던 ‘권검유착’의 적폐를 개선하기 위해, 공수처는 제도적으로 중립적 인사를 임명한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개정 전 법안에서 ‘야당의 비토권’을 인정했던 것은, 공수처를 둘러싼 핵심쟁점의 해결책이었고 방어막이었고 명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최종 확정된 공수처 법에는 막강한 권한에 비해 이를 ‘정치중립성’ 측면에서 통제하는 ‘안전핀’이 사라졌습니다. 공수처가 권력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에 사건이첩 요구권을 행사해 사건을 넘겨받은 뒤, 뭉개버려도 이를 통제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우려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과거 정치검찰이 하던 적폐를 공수처가 이어받을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린 셈입니다.

 

그동안 검찰개혁의 핵심이 ‘정치중립성’ 문제였다고 볼 때, 검찰개혁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공수처가 ‘정치중립성’ 문제에서 기존 검찰보다 나은 것이 없는, 더욱 중대한 하자를 안고 출발한다는 것은 아무리 중립적 시각으로 본다 해도 ‘기대’보다 ‘우려’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공수처 설치에 대해 압도적으로 찬성 여론이 우세했었지만, 현재 완성된 공수처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이 높다는 것은 정치적 지형 변화의 탓이 아닙니다. ‘정치중립성’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합리적 의심’이 정치적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원천적으로 공수처가 검찰보다 권력에 더욱 취약한 구조라면 그 존재의 개혁적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정치중립성’ 측면에서 현재 방식의 공수처 설치를 ‘검찰개혁’이라고 주장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검찰개혁의 핵심을 ‘정치중립성’보다, 비대해진 ‘검찰 권력의 축소’라고 보는 쪽에서는 이번 공수처 법안에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수사권, 기소권 등을 모두 독점한 검찰은 역대 정권과 기본적으로 밀월관계, 때로는 갈등관계를 맺으며 ‘절대권력화’ 되었으며, 정권은 선거 결과에 따라 바뀌지만 검찰 권력은 ‘영원한’ 상황이 도래한 것”이라는 일각의 분석과 우려에는 사실 수긍할 여지가 없지 않습니다.

 

그동안 검찰의 행태를 보면, ‘검찰권력’이 ‘민주적 통제’에 정면으로 맞설 정도로 ‘괴물’이 되었다는 주장이 과장된 것이긴 해도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공수처가 비대해진 검찰 권력의 정상화를 겨냥한 검찰개혁 방안이라고 우길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검찰권력 정상화를 겨냥한 검찰개혁 차원에서도, ‘공수처’ 같은 기구를 만드는 것이 과연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습니다. 공수처를 통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제한적으로 분점 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만, 근본적으로 검찰내부의 개혁과제를 외부에 유사기관 설치로 추진한다는 방식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할 것입니다.

 

과거에 여야 모두 공수처 도입을 주장한 배경에는, 사실 검찰권력 비대화에 대한 문제의식보다 ‘정치 중립성’에 대한 고민이 그 시작과 끝이었습니다. 선출권력의 ‘민주적 통제’와 ‘정치중립성’ 사이의 마찰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찾고자 했던 고민의 결과가 ‘공수처’였다는 것이며, 따라서 공수처가 검찰개혁이라면 그 첫 번째 임무나 정체성은 ‘정치독립성’이라는 것입니다.

 

검찰 권력이 통제되지 않는 ‘절대권력’이 되는 것은 백번 천번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검찰이 통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정치중립화’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권검유착’이 바로 검찰을 절대권력으로 키워 낸 주범입니다.

 

따라서 ‘정치중립화’를 배제하고 ‘통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의 축소와 분산을 논하는 것에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검찰개혁의 핵심인 ‘정치중립화’에서 한계가 분명하다면 검찰개혁 논리가 향후 ‘공수처 개혁’ 논리와 그대로 등치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하여 유명해진 외국어대의 정한중 교수도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모두 갖는 공수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인 현재의 검찰을 답습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검찰의 절대권력화를 겨냥한 대안이 또 다른 절대권력화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는 진영논리나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공수처가 이렇듯 근본적으로 중대한 흠결을 안고 출발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 제도를 도입하는 시기나 방식도 공수처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 중 하나입니다.

 

어쩌다보니 하필이면 선거개입수사, 월성1호기 수사, 펀드의혹 수사 등과 맞물린 시기에, 그리고 ‘내 새끼’라고 굳게 믿었던 검찰총장이 딴 짓을 하는 와중에 공수처를 밀어붙이게 됐지만, 제발 ‘검찰개혁’이라는 동기의 순수성과 선의만큼은 믿어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깊은 산골 수도승에게 물어봐도 긍정적 답변을 얻어내기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공수처 논란과 관련하여, 더욱 안타까운 대목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적 안정성과 더불어 이 나라 품격의 문제입니다. 지금은 여당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흠결이 많은 공수처를 강행했다지만, 정권이 바뀐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 악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검찰총장으로 임명할 때는 내 편이라고 굳게 믿었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배반의 장미’로 피어났듯이, 새로운 공수처장이라고 딴 맘을 안 먹는다는 보장도 없을 것입니다. ‘배반의 장미’들이 유력 대선주자로 솟구치는 흑역사의 반복이 두렵기만 합니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자들에 의해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국가 시스템이 가동될 수 있어야 품격 있는 나라라고 할 것입니다. 검찰이든 공수처든 중대 권력기구들이 제도적으로 탄탄하게 작동되지 않고, 기껏 ‘배반의 장미’들에 의해서나 정치중립성 등을 기대해야만 하는 처지라면 나라꼴이 우습다는 얘기입니다.

 

문대통령께서 ‘박근혜 국정농단과 공수처’를 연결시킨 것은 일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지금의 공수처가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은 ‘윤석열의 칼춤’에서 벗어나 공수처의 그늘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중립이라는 안전핀이 제거된 공수처는 권력비리의 저승사자가 아니라, 권력비리의 수호천사라는 것을 예견하신데 대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참 다행스럽고 고맙기만 한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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