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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있고 중국에는 없는 것은?”

동방예의지국에서 왕이 된 왕이(王毅)

박종완 기자 | 기사입력 2020/12/05 [10:22]

“일본에는 있고 중국에는 없는 것은?”

동방예의지국에서 왕이 된 왕이(王毅)

박종완 기자 | 입력 : 2020/12/05 [10:22]
강길모 미디어이슈 고문


대한민국 정치권에는 ‘법난(法難)’이 한창입니다. 연일 눈만 뜨면 추미애, 윤석렬 두 사람의 이름을 싫어도 봐야 하고 들어야만 하니, 인내심이 많은 국민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짜증이 도를 넘은지 오래입니다. 한쪽은 여전히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을 주장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검찰 장악’을 넘어 사실상 독재의 부활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임기’가 법적으로 보장된 자리라고는 하나, 임명권자가 스스로 임명했듯 스스로 자르면 그뿐일 텐데, 왜 이리 아우성인지 정말 국민 노릇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임명권자가, ‘민주적 통제’의 수순으로 자르면 되는 것을, 저리 주저하고 망설이며 꼼수에 매달리는 것은 결국 스스로 명분이 부족함을 자인하는 것으로 비춰질 뿐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기는 현재 민초들에게 코로나 위기가 최우선이건만, 정작 정치권 사람들은 저런 일로 밤낮없이 싸울 만큼 한가한 듯해 심기가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법치질서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대한 문제를 다루는 이 나라 권력자들의 자세나 인식이 한심하기 그지없기 때문에 국민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위기의 지속과 ‘법치 독재’ 공방 외에도,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이 최근에 또 있었습니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하려 해도 한마디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중국 외교부장 왕이(王毅)의 방한 행적과 그를 대하는 대한민국 고위 당국자들의 자세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전에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란 말이 무조건 좋은 말인 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예의를 중시하는, 품격 있는 나라라는 뜻으로서 국민적 긍지를 심어주는 말이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중국 중심의 ‘중화사상’과 변방 오랑캐들의 ‘사대주의’ 사이에서 탄생한 말이라는 해석을 접하고 나서는 매우 불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란 말의 유래나 문헌 등을 종합해보면, 조선시대 이후로는 확실하게 불쾌한 의미의 ‘동방예의지국’이란 뜻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변방의 오랑캐(夷)들이 사납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데, 동쪽 오랑캐(東夷)인 조선만큼은 고분고분 조공도 잘 바치고 납작 엎드리니, 참 예의가 있는 오랑캐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말이란 얘기지요. 일본도 한 때 중국에 조공을 바치면서 수례지방(守禮之邦)이란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에 대해, 일부 민족사학자들은 동이(東夷)가 우리 민족의 연원이 맞고, 동이(東夷)란 오랑캐가 아닌 고대 중국의 동북부를 지배하고 문명을 꽃피운 군자국(君子國)으로서 공자도 동경했던 나라라고 지적합니다. 조선이 아니라 고조선 시대에 이미 ‘동방예의군자국’으로 우리 조상들이 격조 있는 나라를 꾸려왔다는 것이며, 따라서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을 ‘사대와 굴종’의 치욕적인 말로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고대 중국 동북부 지역을 지배하고 가르쳤던 군주국의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받아들일 것이냐의 문제는 각자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굴종의 역사’로 인식한다면 오늘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고, ‘긍지의 역사’로 인식한다면 계승과 발전에 힘을 기울어야 할 것입니다.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가 극성을 부렸던 시기는 중국의 명나라 시기 200여년이 아닐까 합니다. 고구려와 고려 때 우리 조상들은 중국의 침략을 멋지게 분쇄했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결코 고분고분했던 신하국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중국에 위협적이었던 역사가 굴욕적인 사대의 역사보다 훨씬 길었다고 자부해야 옳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을 굴종의 인식표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자랑스러운 선진 문명의 역사로 계승할 것인지는, 오늘의 한반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중국 앞에 설설 기는 처지라면 ‘굴종과 사대’의 꼬리표는 현재 진행형이 될 것이요, 우리가 세계 10위권의 중견국가로서 중국을 대함에 있어 당당하다면 ‘동방예의군자국’의 전통을 계승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이번 중국 외교부장 왕이(王毅)의 방한 행적을 최근의 한중관계와 겹쳐보면 속이 다 울렁거릴 정도로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한중 외교장관 면담에 지각하도고 사과조차 없었다거나, 시진핑 방한의 사전 조치를 운운하는 등의 구체적 결례들을 굳이 지적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합니다. 이미 무례를 넘어 오만방자한 그의 태도와 그러한 그를 만나지 못해 안달하는 이 나라 집권자들의 자세가 오버랩되면서 속이 메스껍기 때문입니다.

 

시진핑이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라느니, ‘6.25는 침략에 맞선 항미원조의 위대한 전쟁’이니 하며 멋대로 떠들어도 변변하게 항의조차 못하는 나라, 제나라 서열 20위에도 못 끼는 외교부장의 방한에 국가원수급에 버금가는 의전을 베푸는 나라, 주북한 대사는 차관급을 보내고 우리에게는 국장급 이하를 보내는 외교적 결례를 무던히도 참아주는 나라, ‘사드’를 핑계 삼은 내정간섭과 협박에 순한 양처럼 엎드리는 나라, ‘중국은 높이 솟은 산봉우리요 우리는 작은 나라’라며 대통령 스스로 겸양과 예의를 갖추는 나라......

 

우리는 지금도 ‘동방예의지국’으로 살고 있습니다. 구한말 청나라의 조선총독으로 고종 앞에 앉아서 호령하던 위안스카이가 ‘왕이’라는 이름으로 환생했습니다. 홍콩과 신장위구르 인권문제에 온갖 서양 오랑캐들이 비난을 하지만, 동이(東夷) 조선은 ‘내정문제’라며 예의를 지키고 있습니다. 상국(上國)에서 오신 사신은 상석에 앉지만, 우리가 보낸 사신(대통령 특사)은 하석에 앉혀도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오늘도 기껏 임명직에 불과한 검찰총장 하나를 어떻게 하지 못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작은 나라지만, 그리고 자유와 민주,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는 잘 모르겠지만, “대국이라고 소국을 깔보지는 않겠다”는 상국 사신의 말씀을 떠받들며, 이제나 저제나 상국 천자의 알현을 고대하고 또 고대하는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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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12/07 [12:12] 수정 | 삭제
  • 차분하고 소신있느글 언제나 고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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